어느 50대 중반의 상담사분께서 모친상을 치른 지 6개월 쯤 지나 저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삶의 쓴맛 단맛을 충분히 보셨을 나이고,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보다 자녀와 치열하게 산 세월이 더 많은데 ‘고아(orphan)'라는 단어를 쓴 것이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이해는 했습니다.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어머님을 잃은 것은 나를 잃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하나인 부모님이 죽음에 먼저 도달하는 순간, 이제야 자신도 죽음의 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부모님이 중 한 분이라도 살아계시면 그 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심리입니다.
나보다 먼저 도달할 한 몸인 부모가 계시기에 무의식적으로 그 점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부모님 앞에서는 ’늙었다‘, ’주름‘, ’나이 든다‘는 말도 침묵하면서 마음의 방안에 깊숙이 넣어두고 실수로라도 튀어나오지 않도록 꽁꽁 묶어둡니다. 무의식으로라도 마음의 방문이 열리지 않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부모님께 ’아직 젊으시다‘, ’절대 힘든 일 하지마시라‘며 죽음에 다가가는 부모님의 우아한 주름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문닫고 ‘부모’의 죽음은 열어두면서 치밀한 계산으로 괜찮은 척 애씁니다. 말은 산속에 너른 자락을 내주고 넓은 터처럼 옹색하지 않지만, 마음 속 방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이 먹어가는 나’는 부모님의 상실을 경건한 마음으로 온몸을 감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계산되지 않은 ‘고아’라는 말이 툭하고 쏟아집니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인 ‘정신적 고아’를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작은 소리로 하지만 시인처럼 읇조리게 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버립니다.
‘고아(orphan)’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Orpheus)’에서 왔습니다. 이 오르페우스 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읽고 외로운 존재로서 어둠의 세계로 내려간 사람의 뜻입니다. 빛과 이성 그리고 시와 음악의 신, 아폴론(Apollon)에게 하프(harp) 연주를 배우게 되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시인입니다. 이 오르페우스가 하프를 연주하면 맹수도 고양이처럼 얌전해지고, 돌과 나무는 살아서 춤을 춥니다. 또 폭풍도 잠재워서 항해하는 배들을 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오르페우스는 아내인 에우리디케(Eurydice)가 독사에게 물려 죽음을 맞자 슬퍼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봐야 할 주변의 여성들을 방임하면서 오히려 오르페우스 스스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아무튼 오르페우스는 시인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정신적 고아’가 되는 것은 죽음에 다가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을 맛보고 음미하는 중년의 여유를 소유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자주 드러냈던 화와 분노를 이제는 빠르게 눌러버릴 수 있습니다. 자연의 바람이 부드럽게 여행하듯 웃음의 그림자와 비벼가며 놀 수 있을 정도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나’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몸은 독립이 되지만 마음은 분리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에 아들은 아내를 통해 어머니를 찾고, 딸은 남편을 통해 아버지를 찾게 됩니다. ‘나’를 형성하면서 부모님과의 말과 행동의 시스템을 흡수한 것뿐만 아니라 감정과 삶의 무게를 함께 엿보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바라보는 남편과 아내를 통해 부모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내 마음에 떠나지 않은 부모님 그림자와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노화에 관련한 실험을 살펴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있습니다. 나이든 중년의 노화세포와 젊은이의 젊은 세포에 ‘독성 자극’을 가했을 때, 놀랍게도 젊은 세포가 먼저 죽어버리고 노화세포는 반응이 느려서 그렇지 끝까지 견디면서 살아납니다. 이 외에 간 조직 손상을 비교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옵니다. 복부의 내부 공간에 ‘독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 나이 든 동물의 간 조직이 훨씬 손상이 덜 했습니다. 주름이 생기는 것과 같이 신체가 노화되는 것 자체는 죽음에 이르는 전초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지혜의 갑옷’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주름을 물려받아 이마와 손등 그리고 발등까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삶을 노래하고 슬픔의 언덕을 흥얼거리며 바람 타듯 넘나드는 지혜의 체력을 가지는 것이 중년입니다. 정신적 고아가 되는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by 이재연(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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