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면 서로에게 충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배려’한 것처럼 생각하며 화나 분을 속으로 삭이게 됩니다. 이것은 반려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대화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부부도 답답해지지만 내 자신은 더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김치나 젓갈은 발효가 되어야 맛이 들기 때문에 삭히는 게 맞지만, 아픈 마음이나 분 혹은 걱정은 속으로 삭이면 마음속이 검게 썩게 됩니다. 마음속이 검게 썩으면 악취가 진동합니다. 부부 중에 한 사람이라도 검게 썩어서 악취가 나면 부부 둘의 색이 바래집니다. 그 이유는 반쪽이었던 불완전한 각각이 결혼을 하는 순간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인 부부의 한 쪽이 썩으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잘라버려야 전체가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가 계속해서 유지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부작위편향(omission bias)’라고 있습니다.
이 ‘아니하다 부(不)’와 ‘행하다 작(作)’ 그리고 ‘하다 위(爲)’의 뜻이 합쳐진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행동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 모습으로 치우치는 모습’을 ‘부작위편향’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가 하나이기 때문에 부부를 가장 많이 나눠야 하는 존재입니다. 부부가 되는 순간 ‘대화’는 의무이자 법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부부라는 집에서 2층집 3층집으로 높아지는 대형 건물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1층에서 부부가 대화하지 않으면,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금이 가는데도 1층은 수리도 하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2층과 3층에 있는 자녀들과도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삼풍백화점’처럼 대형 참사가 일어납니다. 모두가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1931년도에 미국의 산업 안전 분야 개척자였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1:29:300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중상자가 1명이 나오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9명의 경상자가 나오기 전에는 부상을 당할 300명의 잠재 부상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하인리히 법칙은 부부와 가족의 문제점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합니다. 가족의 큰 문제점 하나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가족 구성원들에게 29번의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가지기 전에 아플 수밖에 없는 300번의 ‘비난’, ‘방어’, ‘경멸’, ‘마음의 담 쌓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1층의 부부가 무너지면 2층과 3층의 자녀들도 무너지는 것은 자명합니다. 왜냐하면 무너진 모습을 보고 자랐고, ‘비난’, ‘방어’, ‘경멸’, ‘마음의 담 쌓기’하는 모습을 자녀들이 성장해서 부부가 된 후에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면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시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비난’, ‘방어’, ‘경멸’, ‘마음의 담 쌓는’ 말부터 하지 말라고 이야기 드립니다. 이 말들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트리게 됩니다. 무너진 자존감의 성은 방어태세를 취할 힘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간의 말을 전달하는 방법은 결혼 전에 사랑이라는 무기보다 더 중요한 방패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건강한 방패’가 없기 때문에 찌르기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좋을 때는 무엇이든 무찌를 수 있는 도구이지만, 건강하지 못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찌르는 ‘흉기’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더불어 대화하는 방법을 ‘결혼식’ 전에 먼저 ‘훈련’받아야 합니다.
휴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휴식과 소극적인 휴식이 그것입니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보거나 잠만 자면 신체적으로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다음날 출근할 때 몸이 피곤해서 짜증이 날 정도가 됩니다. 반대로 주말에 여행을 하거나 좋은 장소를 찾아서 몸을 움직이면서 보냈을 때,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산뜻한 기분으로 나가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휴식이 진짜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몸도 맑게 해 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 사이에서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생각을 버리고 끊임없이 적극적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이야기 하지 않고 지나가면 잘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만 믿고 그냥 지나가면 상처는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가서 큰 돌덩어리가 됩니다. 그 돌덩어리는 나중에 포크레인으로 아무리 작업을 해도 건져 올려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약물을 사용합니다. 마음의 모래에 약물을 뿌려서 축축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후에 포크레인으로 모래를 퍼고 또 퍼서 돌덩이를 꺼내게 됩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상관착각(illusory correl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는 두 사건 사이에 상관이 없는데도 서로 상관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날씨가 좋은 날에 아내(남편)의 기분이 좋아서 대화가 잘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을 마음에 두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에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날 상처가 될 만한 상황이 왔는데도 좋은 날씨만 기다립니다. 2011년 함께북스에서 출판된 ‘나를 위한 하루 선물(서동식 지음)’ 책 9페이지에 ‘3번째 선물, 인생의 날씨’에서 영국의 사회 비평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이 한 말이 나옵니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며,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부부는 ‘상관착각’에 빠지면 안됩니다. ‘감정의 날씨’를 모두 즐기고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감정이 타지 않도록 선크림도 발라주고, 감정이 젖지 않도록 우산도 씌워줄 수 있습니다. 또 바람이 잘 들도록 마음의 창문을 열어줄 수 있으며, 눈이 오면 함께 지나간 추억을 꺼내 삶의 가치도 같이 맛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면,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됩니다. 어떤 부모에게 성장했냐에 따라서 아내를 바라볼 때, 자신의 엄마를 기준으로 아내를 바라보게 됩니다. 아침을 꼭 차려주셨던 자신의 어머니를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침을 차려주지 않는 아내를 보며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내의 아들과 딸의 밥은 먹입니다. 즉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침을 꼭 차려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남편을 바라볼 때, 자신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남편을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의 내 아내와 내 남편의 마음을 읽고 나누고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수많은 정보의 대부분은 부모님이 새겨놓은 것들입니다. 그 정보를 기준으로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부부가 한 평생 만들어갈 자신들만의 행복한 정보는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부부로서 새롭게 만들어야 할 기준이 없고, 부모에게 받은 정보나 주변 사람들의 말이 기준이 된다면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에도 빠지게 됩니다. 사후확증편향에 빠지면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자기는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없으면서, 꼭 일이 터지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반려자에게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면서 말문도 닫고 마음의 문도 닫게 되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문을 늘 열어두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훤히 보이는 '열린 창(open window)'을 유지해야 합니다. 나도 내 마음이 보이고 남편(아내)도 내 마음을 알고, 나도 아내(남편)의 마음을 알고, 반려자 그 자신도 알고 있는 훤히 열려있는 마음을 부부는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 전체에 환한 빛이 늘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옵니다.
영어로 ‘배우자’를 ‘the better half'라고 합니다. '나 보다 더 나은(better) 반쪽(half)'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것입니다. ’better‘이라는 단어는 ’good'의 비교급입니다. 그러면 먼저 서로가 ‘좋은(good)' 반쪽이 되어야 합니다.
by 이재연(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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