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이재연교수 인(IN) 심리학 : 글자의 냄새를 자주 맡아야 합니다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책은 그 자체의 냄새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책도 사람처럼 냄새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코에는 350개의 수용체(acceptor)가 있습니다. 다양한 냄새를 통해 식욕을 돋우는 역할도 하지만 냄새는 ‘기억(memory)'을 끄집어내는 역할도 합니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단순히 후각적인 ’감각‘을 넘어서 ’언어의 기억‘을 살리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편하더라도 전자책이 큰 '매력'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냄새'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프루스트 효과는 후각의 경험을 매개로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웅크려 잠자고 있는 ‘기억’을 깨어나게 해서 지금 이 순간 떠오르게 만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판한 책 7권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Time Regained)'에서 주인공이 마들렌(madeleine) 과자를 먹다가 과거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에서 프루스트 효과 또는 마들렌 효과(madeleine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과자를 먹으며 과자냄새를 맡으면 다 큰 어른이라도 어렸을 때 시절이 기억나고, 라면을 먹으면서 라면냄새를 맡으면 과거에 힘들었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이전에 사고가 났었던 경험이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양치질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치과에서 치료받으면서 맡았던 냄새를 치약에서 맡았다면 치과치료 때 아팟던 기억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양치질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용을 합니다. 책에서 나는 냄새는 분명히 지식의 기억을 담당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가도 지식의 바다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추천받았던 책들까지 갑자기 많은 기억이 떠오르게 됩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모넬 화학 감각센터(the Monell Chemical Senses Center) 의 레이첼 헤르츠(Rachel Herz) 박사팀에 의해 입증되었다. 심리학자이자 인지 신경학자인 헤르츠는 1998년부터 뉴욕 아카데미 과학 연보(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Sciences)에 '냄새가 기억에 최고의 단서인가? 연상 기억 자극의 교차 양상 비교(Are odors the best cues to memory? A cross-modal comparison of associative memory stimuli)'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에서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세 가지 단서를 주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캠프파이어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첫 번째는 캠프파이어 동영상 두 번째는 캠프파이어 소리 마지막 세 번째는 캠프파이어의 냄새였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세 가지 중 가장 기억을 생각하게 되살려 준 것이 무엇이냐고 평가하라고 했습니다. 시험 결과 ‘냄새’가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시각과 청각도 기억자극에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이끌어내는 ‘기억자극’에는 ‘냄새’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뇌 속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는 시각보다 냄새를 맡을 때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hippocampus)를 더 자극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코를 막은 상태에서 양파와 사과를 먹는 실험을 하면 대부분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양파고 무엇이 사과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냄새라는 것은 '정의'를 내리는데 핵심역할을 담당합니다. 냄새가 뇌를 자극해서 언어적 개념을 만들어내어 몸의 행동을 유발하게 됩니다.
실제로 일정한 공간에 여성들이 같이 거주하게 되면 생리 주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흥분을 운반한다는 뜻의 페레인(pherein)으로부터 유래된 페로몬(pheromone)은 다른 동물체에 영향을 주기 위해 분비되는 화학물질입니다. 이 호르몬의 구조가 사람의 냄새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냄새’라는 존재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책에도 존재합니다. 책에서 나오는 냄새를 의식하면서 맡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책과 종이 냄새에 익숙해져 갑니다. 갖 태어난 아기 같은 경우에 처음 몇 시간 동안 냄새로 엄마를 인식합니다. 10일 정도 걸려서 엄마의 젖가슴 냄새를 완전히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엄마와 아기의 접촉을 통해 서로의 냄새를 서로 유사하게 만듭니다. 특히 남자아이 같은 경우에 어른이 되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려서 엄마에게 맡았던 냄새를 풍기는 여성을 아내로 택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 만큼 책과 독자 사이에서 가지게 되는 글자냄새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서 ‘매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재연(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