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이재연교수 인(IN) 심리학 : 고집이 아집에 이르기 전...
"우리 아이는 고집이 세서 말을 듣지 않아요."(어린 아이의 고집)
"우리 아버지는 아집 덩어리에요."(부모의 아집)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수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을 고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 '고집'을 '재생'으로 바라봅니다. 즉 마음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심상이 재생되는 것을 '고집'이라고 합니다. 심상(image)이라는 것은 심리학에서 정의하기를, 어려서 경험한 것이 마음속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형태를 자세하게 머리로 기억하는 것은 심상이 아니라 '지각'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 감각으로 기억하는 것을 '심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산을 그리라고 할 때 자세하게 모든 형태를 기억해서 그리는 것은 지각의 표현이지만, 눈 덮인 산을 그리거나 산에 나무가 없이 번번한 모양인 민둥산을 그리거나 불에 타고 있는 산모양을 그리는 것은 산의 단순한 지각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담아둔 시각적 형상의 심상을 종이에 그려 내려 놓은 것입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집을 그려보게 하면 지각이 아니라 마음속 감각이 기억하는 심상이 그대로 표현됩니다.
이렇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아주 작은 표정과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있는 그대로 경험을 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부모의 심상을 담아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상을 사춘기와 성인이 되어서 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시키지 못하고 또 긍정적으로 수정하지 못한채 부모에게 받은 최초의 심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고집'인 것입니다. 부정적 심상이 고집으로 발전되기 전에 마음속 심상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집덩어리가 아니라 '건강한 자아'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심상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무거운 마음이 자라서 답답함을 느끼고 답답함을 벗으려고 보니 얼굴에 이미 부모가 물려준 가면이 씌여져 있어서 벗겨지지가 않아 힘든 것입니다.
심상(image)과 표상(symbol)은 다릅니다.
심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수정하고 주관적으로 존재시키는 것을 말 합니다. 하지만 표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표상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부모를 생각하면 이 두 가지가 섞이면서 머리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머리의 표상은 있는 그대로의 부모이지만 마음의 심상은 나에게 아픔을 준 부모이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더 아픈 것은 부모가 되어서 자녀 앞에 설 때, 마음이 밀어낸 부모의 가면을 자신이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머리로 부모의 아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머리로 충분히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된 다 큰 자녀도 원가족 부모 앞에 가면 다시 아픕니다.
고집의 '고(固)'는 '굳다, 가두다'의 뜻입니다. '집(執)'은 '두려워하다, 가지다'의 뜻이니다. 즉 스스로를 가두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고집입니다. 변화와 수정이 힘든 것입니다. 고집의 영어 단어는 'obstination'입니다. ob(반대편), st(서다), ination(명사접미어)가 결합된 의미입니다. 즉 반대편에 서는 것이 고집센 것입니다. 과거 처음에 세겨둔 이미지만 고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집이 세면 고집불통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현재의 소통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단호한데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도 잘 냅니다. 고집에서 고집불통을 거쳐서 황소고집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고집이 늘게 됩니다. 고집이 가지고 있는 힘이 이전보다 큰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집(我執)을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고집스러운 부모의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가두게 되면 '아집(egoistic)'이 생기게 됩니다.
아집에서 아는 '나(I)'를 뜻하는 '아(我)'와 두려워하는 '집'이 합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타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나를 내 밖의 타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별된 생각과 마음의 심상들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묶여있다보면 그러한 상태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더이상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오래된 헌집은 익숙합니다. 오래 그곳에서 살다보면 불편함조차도 못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새집을 짓고 조금만 살아봐도 자신이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는지 알게 됩니다. 고집이 아집으로 이르기 전에 마음에 새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에게 받은 가면을 벗고 자녀와 온전히 감정의 춤을 출 수 있습니다. 또한 심상의 변주가 가능합니다.
by 이재연(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