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이해

[펌] 이재연교수 인(IN) 심리학 : 가족은 매일 매일 사랑이 배고픕니다

더디맨 2016. 11. 8. 19:56

하루 삼시세끼를 굶으면 몸이 아픕니다. 그런데 사랑세끼를 거르게 되면 몸도 마음도 모두 고장이 납니다. 밥은 숟가락 들어 올릴 힘과 입을 벌려 씹을 의지만 있으면 넘어갑니다. 하지만 마음먹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들어 올릴 힘을 쓰려고 하면, 자존심이 가로막고, ‘가족이라 이해하겠지’라며 착각하고, 나는 당신에게 귀를 열고 있는데 당신은 나에게 귀를 빌려준 적이 없다며 억울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경청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밥 먹기는 쉽지만 마음 한 번 먹기는 어렵습니다. 


수 십 권의 심리학책들은 ‘행복의 비밀’을 시원하게 움켜쥔 손을 상대에게 모두 펴서 보여주듯 알려주고 있지만 ‘행복의 실천’은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습니다. 아니 못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늘 스스로의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장기이자 재주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조차도 글만큼, 동영상만큼 나 스스로가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늘 고민합니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은 하지말자! 아프면 빨리 꺼내서 토닥여주고 꼬여있는 감정을 풀어주자’라고 생각하지만, 행동 없이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남들에게는 ’꽃을 보라‘하면서 내 마음 안에는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는 구나..’하면서 자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에는 몇 가지 심리적인 원인이 존재합니다. 


심리학에는 ‘변화 맹시(change blindnes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변화 맹시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연속된 상황 속에서 의도적으로 한 부분을 변화시켜도 느끼지 못하고, 그 변화의 자극을 받아들여서 판단하거나 또 다른 판단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의 순간적 이전과 이후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의 변화를 보지 못합니다(부부변화 맹시).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면서 변화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자녀변화 맹시). 가족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변화를 보지 못합니다(가족변화 맹시). 음... 아내가 오랜만에 헤어스타일을 바꿔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 변화 맹시에 해당합니다. 


변화 맹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진치료(photo-therapy)' 기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잡고 정지시켜서 지면에 내려놓고 과거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하지만 사진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먼 시간을 달려와 지친 부부와 가족에게 잠시 쉬면서 서로 얼마나 달려왔는지 격려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시간정거장‘인 셈입니다. 부부는 예전의 연애하던 사전을 꺼내보고, 부모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사진을 꺼내서 오랜 시간 바라본다면, 지금 변화된 많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화된 부분이 보일 때는 그렇게도 어렵던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밥 먹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변화 맹시는 앞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 맹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것입니다. 


이 무주의 맹시는 주의력이 결여된 것입니다. 즉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스스로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의 착각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실험이 있습니다. 


지도를 들고 길에서 아무나 잡고 길을 물어본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때 ‘길’을 알려주려고 집중해 있는 사람과 듣고 있는 사람 사이에 아주 큰 나무판을 옮기는 사람들이 끼어듭니다. 이 때 듣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길을 알려주고 있는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못 믿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심지어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는데도 몰랐습니다. 이 실험이 워낙 유명해서 EBS에서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부는 대부분이 살아가면서 ‘무주의 맹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알거라고 착각합니다. 예전의 아내가 아닙니다. 아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느라 감정고갈이 심하고 자신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내어준 엄마로 변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물론 아내도 남편의 변화를 놓쳐버립니다. 남편이 어깨에 짊어진 가정의 무게와 가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실감을 채워주기 보다는 아이들을 마음에 품고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자녀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남편에게는 아내의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당연히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에서 부모가 되었다고 밥만 더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더 키우고 늘려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게 됩니다. 남편이 그렇고, 아내도 집밥을 하기가 싫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키우고 늘리는 훈련을 하면서 부부에서 부모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형성하는 것은 부부가 성장하는 것이고 부모로서 ‘사랑의 우산’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는 순간 온갖 유혹과 스트레스 그리고 우울의 비가 수시로 내립니다. 처음에는 비가 작게 내리지만 머리가 젖고, 온 몸이 젖으면, 마음까지 젖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마음이 젖어서 마음에 감기가 오면 그때는 온 가족이 우울을 나누고 공격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유혹의 비도 막아 줄 수 있는 사랑의 우산을 형성해야 합니다. 


식물을 물감이 들어있는 컵에 넣으면, 줄기를 따라 어디까지 빨려 들어가는지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니 시원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매일 주어도 상대방의 마음의 줄기에 어디까지 차서 올라갔는지 혹은 어느 정도가 부족한지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가족은 표현을 해야 합니다. 


텔레마케터 분들은 매일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말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머리로 ‘사랑’을 주는 것도 매일 주다보면 가슴이 마비가 됩니다. 그 이유는 머리만 많이 쓰다보면 가슴을 쓰는 방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노동자라 하지 않고 감정노동자라고 합니다. 아내가 자녀에게만 사랑을 주고, 남편이 고객들에게만 사랑한다 말하면 서로에게 작동해야 할 ‘마음사랑’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서로를 위해 사용할 마음사랑이 남아있어야 합니다. 


부부의 기둥이 세워져야 가족이라는 집이 형성됩니다.

   

by 이재연(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