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이해

[펌] 이재연교수 부부상담 : 조망수용능력

더디맨 2016. 1. 28. 09:19
부부는 서로 상대방이 바라보는 만큼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조망수용능력(perspective taking ability)'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조망(眺望)은 '멀리 바라본다'는 뜻이다. 조망은 영어로 'perspective'로 관점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 미술에서는 '원근법'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일정한 시점에서 본 대상과 그 공간을 내 눈으로 본 것처럼 똑같이 멀고 가까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종이에 그리는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종이말고 마음 에 그 멀고 가까움의 개념을 그릴 수 있으면 심리적 개념으로 '조망'능력이 있다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망수용능력은 '역지사지'의 능력을 말한다. '남이 보고 느끼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똑같이 볼 수 있는가'라는 능력을 말한다. 

부부상담이나 가족상담 할 때 '빈의자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이 기법은 실제로 빈의자에 이해되지 않는 부모 중 한 사람이나, 나에게 지금 힘들게 하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를 상상으로 앉아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이다. 충분히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나눈 후, 이번에는 반대로 빈의자에 자신이 가서 앉아서 상대방이 되어 자신에게 역으로 말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 빈의자 기법으로 상담을 할 때 놀라운 점은 공감능력과는 상관없이 아픔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 빈의자 기법은 심리학에서 형태주의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게슈탈트라고도 한다.

이 이론은 전체와 부분을 나눠서, 전체는 부분에 영향을 주고, 부분 역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개념인 것이다. 예를 들어, 상처받은 자기와 이미 돌아가셨지만 상처를 준 아버지의 관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보면 전체적으로 어둡거나 찌그러져있거나 뾰족뾰족한 그림일 것이다. 이때 그림의 전체에 해당하는 개념은 둘이 관계고, 부분은 아버지와 자기다. 이때 자신과 마주보이는 빈의자에는 아버지를 앉혀서 대화를 나누게 한다. 이 대화는 물리적인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부담이 덜 된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힘든 대상이기에 정신적 자기가 깨질 듯 아픔이 다시 찾아온다. 이 때 정신적 자기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상상의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한다.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떠나 보내지 못한 화의 찌꺼기와 감정 쓰레기다. 이 찌꺼기와 쓰레기를 눈물을 흐르는 통로를 통해 쏟아내버리게 된다. 계속 흐르는 눈물이 눈을 가려서 흐려져야 아픈 기억도 같이 흐려질 수 있다. 그만큼 아픔의 깊이 만큼 상대방을 수용할 능력은 높아지게 된다. 물리적으로는 시력이 좋아야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마음의 조망능력이 높아야 상대를 잘 볼 수 있게된다. 이때 눈문이 그 역할을 하게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앉는다. 이젠 시간이 흘러 예전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의 자기가 말하게 된다. 전체에서 두번째 부분이 변화되는 시작점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첫째 보라의 생일날 늘 꼽사리를 껴서 같이 생일축하를 받던 둘째 덕선이가 참고 참았던 둘째의 설움을 쏟아놓는다. 다음 날 아빠가 둘째 딸 덕선이에게 하는 말을 빈의자에 앉아서 아빠가 되어 이렇게 말한다. "잘 몰라서 그래. 이 아빠도 태어날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 인디.. 그러니까 우리 딸이 좀 봐줘."

이제 상처 받은 자기와 상처준 아버지의 두 부분의 변화가 조금 생겼다. 서로 "나 아프다"라고 말하고, "나도 처음이라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진심을 나눴다. 이젠 전체 그림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이렇게 역할을 서로 바꿔서 상대가 되어보면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 혹은 감정을 이해하고 눈물의 통로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 순간 조망수용능력은 향상된다. 향상된 이 능력은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아내와 남편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바뀌게된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면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 공감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조망(perspective) 해야 하는 것이다.

'조망'권 없는 지하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창문 너머 주변이 보여야 내가 있는 곳과 창문너머의 다른 곳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창문에 비치는 내모습도 확인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카지노에는 ‘시계’, ‘창문’, ‘거울’이 없다는 것이다. 시계가 없으면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서 계획적인 행동을 하는 나를 되돌아 볼 수가 없다. 창문이 없으면 내가 있는 공간과 안과 밖에 대한 공간적 가치를 잊게 된다. 거울이 없으면 나의 정체성을 잊게 된다.

부부는 조망수용능력을 통해 서로 상대방이 바라보는 만큼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시계가 되어주고, 창문이 되어주고 또 거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부부는 나와 너에서 너와 나로 마지막으로 우리가 최종 목표여야 한다. 

<이재연 교수>


출처 : [심리학 그리고 생각] 네이버 카페 http://me2.do/xwiMV2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