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제네랄리스트(Generalist)
[아빠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10]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제네랄리스트(Generalist)
이 문제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삼성에 입사한 이후까지 신입사원 시절의 아빠에게 있어 중요한 화두였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로서 Specialist를 지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도 같지만 아빠는 유독 Generalist가 되겠다고 주장했었다. 당시로서는 굳이 공학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Generalist라는 개념은 생소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철없고 무모하게만 생각되어 졌다. 지금은 창원에서 생활하는 당시 절친한 입사 동기와도 이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지만 커다란 사회적 인식의 장벽 앞에서 한 개인의 항변은 무력할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였었다.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Specialist냐? Generalist냐?'는 문제를 재론하자는 것이 아니다. Specialist에 비해서 Generalist가 더 우월하다는 증명을 해 보이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Generalist라는 것이 Specialist의 상대적인 개념의 의미 밖에는 없다고 하는 과거 일반의 생각에 반론을 하고자 함이다. 즉, Generalist도 똑같이 중요한 존재이고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 Specialist는 「I字형」이라고 말한다. 한 분야에 깊이 알고 있다는 특징을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반면 Generalist는 「ㅡ字형」이라고 말하는데 깊이는 없지만 넓은 분야를 알고 있다고 묘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가자 「T字형」인간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인재(人才)는 전문분야에 능통하되 또 한편으로는 다른 분야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연 이어 「π(파이)형」이니 '문어발형' 이니 하는 웃지 못할 신조어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여러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폭 넓은 시야도 가지고 있는 만능형 인간이다.
쉽지 않아서 그렇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사회는 그러한 방향으로 인재를 양성해내기 시작하였고 대표적인 것이 '대기자(大記者)'로서 예를 들면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갖춘 방송기자와 같은 직업인이다. 기술관료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기업에서 불고 있는 '테크노-MBA' 출신의 CEO 열풍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Specialist의 관점에서 Generalist를 지향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든다.
Generalist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좀 더 예쁘게 말하면 '다재다능'이나 '팔방미인' 정도가 되겠지만 아빠는 이 표현도 역시 마음에 차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Generalist도 하나의 전문분야다. 상당히 많은 분야를 폭 넓게 알고 있어야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들이 있다. 폭 넓은 시야라는 것은 단순히 여러 가지의 의견을 절충하거나 종합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또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안다고 하는 뜻은 과거의 인식처럼 전문성없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박사가 될 정도의 깊이를 가지지 않는다 뿐이지 상당 수준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 저것 잡다하게 아는 것이 아닌 일련의 체계와 연관성을 가진 지식 군(群)을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박사라고 하는 사람은 달리 표현하자면 전공한 분야 외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한 분야에 완전하게 정통하게 되려면 한 평생을 바쳐도 모자란데 어떻게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둘 수 있겠는가 말이다. 때문에 「T字형」,「π(파이)형」인간이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본다. 결국 Specialist가 되든지 Generalist가 되든지 아니면 '어중이떠중이'가 되든지 하는 문제이다.
Specialist는 본인의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세워 인류에 기여한다.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또 다른 훌륭한 Specialist를 키워 내는 일은 100% 장담하기 어렵다. 분명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훌륭한 야구선수라고 해서 훌륭한 야구감독이 되지 않는 이유이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능한 이유가 그렇다. 입산하여 도사에게 전수받는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사회, 나아가 고도로 정보화된 지식화사회에서는 수 많은 Specialist가 존재하며 각 자의 성과는 그들의 몫이지만 복합적으로 이루어 내는 성과는 최고 책임자 또는 관리자의 몫이 되고 만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 보자. 그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권력만 가지고 있다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필요한 분야가 바로 Generalist라고 하는 또 다른 전문가인 것이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Specialist를 키워 낸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낸다. 박사 만큼이나 도달하기에 힘이 드는 수준의 사람들로서 21세기는 이런 자들도 전문가만큼이나 많아질 것이다. 특히 이공계학도들이 '전문성'의 굴레에서만 허우적댈 일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7. 4. 5 아빠가 OO에게